봉림사의향기

절오백 당오백-서귀포시 호근동 ‘봉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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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0 00:00 조회1,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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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수에 미혹 씻어내니 진면목 드러나네


1929년 최혜봉 스님 용주사 창건…황림사, 봉림사로 개명

일경 스님 주지 부임 후 대웅전 등 불사 여법한 도량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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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호근동 봉림사(주지 일경 스님)로 향했던 지난 13일, 봄날 같은 따스한 햇살이 마치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했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한라산이 감귤과수원을 무대로 하얀 단청을 한 도량처럼 위풍당당하다.

봉림사 입구는 차량이 운행이 겨우 가능할 정도였지만 오솔길처럼 포행에는 그만이었다. 내리막길을 걸어가자 평야처럼 펼쳐진 ‘하논’이 한 눈에 들어온다. ‘큰 논’이란 뜻의 하논 일대는 수십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강정동과 더불어 쌀농사로 유명했었다.

봉림사는 하논 분화구 내 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다.

봉림사를 찾은 지난 13일 주지 스님은 49재 준비로 분주했다. 스님은 ‘뭐 소개할게 있냐’며 손사래를 치지만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넨다.

봉림사는 지난 1929년 최혜봉 스님에 의해 용주사(龍珠寺)라는 사명으로 창건됐다.

당시 혜봉 스님이 이곳에 창건 원력을 세우자 김복남 거사가 절터 1660㎡(473평)을 시주한 것이 불법 홍포의 시초라고 한다.

혜봉 스님은 지난 1945년 조선불교혁신 제주승려대회 당시 용주사 대표로 참여하는 등 교무회원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왜색불교 타파에 앞장섰던 스님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948년 4․3이 발발하면서 용주사 역시 그 회오리에서 빗겨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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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은 그 해 11월 토벌대에 의해 전소됐고, 그나마 남아있던 부속 건물과 불기 역시 그 후 잿더미가 됐다. 당시 스님은 불상과 탱화 등을 지고 남의 집을 빌려 임시 거처로 사용하다 1953년 초가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했다고 전해진다.

지난 1968년 주지로 부임한 혜공 스님은 용주사를 황림사(潢林寺)로 개명하며서 대웅전을 중수했다. 이후 1983년 제주시 삼양동 불탑사에 적을 두었던 일경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사찰명을 봉림사(鳳林寺)로 다시 변경했다.

일경 스님은 “현재 감로당(요사채)이 자리잡은 곳에 당시 대웅전이 들어서 있었다”면서 “당시 대웅전은 슬레이트 지붕이어서 여름철이면 화탕지옥(火湯地獄)이나 다름없었고, 장마철이면 비가 새는 등 부처님을 모실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스님은 그 후 여법한 법당 조성을 위한 원력을 세우게 된다. 시주금과 기도비를 한푼 두푼 모아 인근 부지를 매입하는 등 10년의 각고 끝에 지난 1994년 대웅전을 완공했다. 대웅전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협시불로 관세음․대세지보살이 봉안돼 있다.

다포양식 팔작지붕의 정3칸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대웅전은 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지난 2006년 서귀포시 지정 ‘향토유형유산 제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봉림사 일대는 속칭 ‘원샘동네’라 불릴 만큼 물이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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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사 대웅전과 감로당 사이에 맑은 용천수가 흐르는데 그 맛이 감로수나 진배없다. 주민들은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할 때만 물이 넘친다’고 얘기할 정도로 이 용천수는 신성시 되고 있다.

매년 서귀포시청에서 실시하는 수질검사에서 ‘으뜸 청정수’로 판명 받고 있을 정도로 수질도 깨끗하다.

일경 스님은 “대웅전 불사가 한창일 때 제주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지만 물이 마르지 않아 수많은 일꾼들이 식수 걱정 없이 불사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어린이 법회에 동참했던 한 아이가 매일 이 물을 떠 가져가기에 연유를 물었더니 아이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이 물을 드리면 낳을 것 같아서 물을 떠간다’고 답할 정도로 주민들은 신성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이 아이의 엄마는 병이 완쾌돼 건강을 되찾았다”고 했다.

이러한 영험 때문인지 스님의 용천수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스님은 매년 음력 3월16일과 10월16일, 2차례 용왕제를 지내며 감사의 뜻을 공양하고 있다.

봉림사가 서귀포지역에서 불법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의 원력도 있었지만 봉림사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온 신도회(회장 강순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도회 산하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으로 옮기는 보현회(회장 오성향)와 부처님 법을 다 배우리라는 원을 세워 매주 토요일 경전 독송과 자비도량참법기도를 봉행하는 문수회, 곧은 불심으로 신행활동을 펼쳐온 거사림회 등이 있다.

신도들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내가 있는 것과 다름없이 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새기며 부지런히 수행하며 밝은 사회와 가정을 만들어 밑거름이 되고 있다.

스님은 “냄비근성으로는 절대 불도를 이룰 수 없다”며 “샘솟는 용천수와 같이 늘 한결같이 수행해야 한다”고 신도들에게 강조한다.

스님이 수행자로서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도 새벽예불 때 마음에 새기는 맑은 신심 덕분이다. 스님은 새벽 4시, 법당 문을 열어 부처님 앞에 촛불을 키고 목탁을 치면서 번뇌를 몰아내 깨달음의 마음을 낸다. 그렇게 스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중생의 꿈과 미혹을 일깨우기 위한 법문을 하루도 놓치는 법이 없다.

봉림사는 다같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대승보살의 일체의 마음을 지극히 담아 일체 중생이 함께 하는 수행 도량으로서 서귀포지역을 정토로 일구는데 앞장서고 있다.
2008-12-22 오후 2:25:29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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