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하논(중) 한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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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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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하논분화구''프로젝트]최고의 自然史저장고 ''이탄습지'' 간직 2003. 10.22. 입력
*** 수만년 자연사정보 밝혀지나 (중)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
현재 하논 분화구 내에는 10여체의 민가를 비롯해 대부분 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알오름과 외륜산은 감귤원이 조성돼 있다. 북사면에는 삼나무와 해송이 조림되어 있다. 결국 자연식생은 거의 모두 사라져 현재로선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하논은 이미 16세기 이전부터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원래의 환경은 다양한 수생식물이 서식하는 천연습지였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학계에 따르면 하논의 분화구 토양 속에 묻혀 있는 꽃가루 분석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약 1만1천년 이전인 최후 빙하기 시대에 지금은 일본특산으로 알려져 있는 삼나무를 비롯해 제주도에서 멸종되어 버린 가문비나무(북한 고산지대), 솔송나무, 너도밤나무(울릉도) 등이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꽃가루는 스포로레닌이라는 매우 강한 화합물로 이루어진 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산화나 오존의 영향을 받지 않는 호수 바닥이나 습지에 떨어지면 수백만년 동안 썩지 않고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고기후 환경을 확인할 수 있다.
하논 분화구 바닥은 빙하시대인 2만년전에 이미 대규모 습원을 형성하고 있었고 알오름 및 외륜산에는 울창한 자연림이 존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 후 간빙기(빙기와 빙기와의 사이로, 한때 기후가 온난해져서 빙하가 고위도 지방까지 물러갔던 시기)를 통해 습원은 수심이 낮아져 현세에 와서 논으로 이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하논의 외륜산 등 주변의 숲은 어떻게 변했을까.
전문가들은 빙하기 시대에는 서귀포와 제주도 전체가 삼나무, 가문비나무, 솔송나무 및 너도밤나무 등 한대성 침엽수림을 이루다가 간빙기를 거치면서 모두 멸종되었거나 한라산 고산지대로 피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한대성 침엽수림은 온대의 낙엽활엽수림으로 천이되고 마침내 천지연의 난대림과 유사한 상록활엽수가 숲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제주의 옛 식생사를 하논에서 규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숲은 습원과 인위적인 간섭으로 결국 사라지고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지금에 이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논이 간직한 생태적 가치는 이탄(泥炭)습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탄습지는 자연 상태에서 생물체를 부패시키지 않고 장기간 동안 보존할 수 있는 습지로, 최대의 저장고이자 최고의 자연박물관으로 불린다.
수만년전에 서식하던 식물의 사체와 꽃가루(화분)를 비롯하여 당시 서식하던 플랑크톤 등 미생물뿐만 아니라 고등 동물의 사체까지도 현재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례가 많다. 지난세기 동안 북유럽의 아일랜드 이탄습지에서 선사시대에 묻힌 사체가 80여구가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피부까지도 완벽하게 남아 있어 성별은 물론 나이까지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평강식물연구소 김봉찬소장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탄습지로 밝혀진 곳은 하논을 비롯해 람사 보존습지로 지정되어 있는 대암산 용늪과 무제치늪 등이 있다. 용늪과 무제치늪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연식생인 고층습원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어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하논은 가치에 비해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고 말했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하논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하논은 4천년전에 형성된 용늪의 이탄습지보다 훨씬 이전인 2만∼3만년전부터 이탄습지가 발달한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일본 학자인 히토시 등 연구진은 하논에서 수집된 이탄퇴적물의 분석을 토대로 과거 최후빙하기의 극동아시아 기후변동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국내 연구진에 의해 미기록 광물인 ‘남철석’이 국내 최초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같은 사실은 하논이 극동아시아의 고생물 및 고기후 등을 밝히는데 획기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처럼 하논의 이탄습지는 국내 최대의 자연박물관으로서 그 연구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얼마나 많은 고생물과 희귀 광물질이 묻혀있는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하논조사단이 내년 상반기쯤 도출해낼 하논퇴적물 시추결과가 이에대한 해답을 줄 것이다. /강시영기자
[사진설명]하코네 습생화원(아래)
일본 도쿄 부근에 위치한 하코네 습생화원은 1976년 방치된 습지에 건초지와 습원 및 습생림을 생태복원 기법으로 마치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는 자연식생처럼 조성해 일본 습지식물의 보존은 물론 일반인을 위한 생태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하코네습생화원은 연간 1백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유명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집중조명/''하논분화구''프로젝트] 하논에 살았던 강두선씨
2003. 10.22. 입력
하논 사람들은 예전에 어떻게 살았을까. 하논에서 태어나 4·3 당시까지 거주했고 현재 하논에 본인 소유의 토지도 갖고 있는 강두선씨(71)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강씨의 아버지 故 강여행씨는 호근동의 유지로 하논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열여섯살까지 하논에서 살았던 강씨는 하논의 옛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씨는 “처음 하논에서는 16가구가 살고 있었지만 12가구로 줄어들었다가 4·3때 이마저도 불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하논의 풍경은 이렇다. 당시에는 하논의 동측을 동거지, 서측(서귀포공동묘지 부근)을 서거지라 불렀고 현재 봉림사에서 호근동으로 가는 길 부근을 웃거지라 불렀다. 강씨의 집은 웃거지인 호근동 192번지에 있었다.
“하논에 논 있어야 부자 감귤농사도 그곳서 시작”
하논 남측에는 세개의 오름이 있다. 북쪽에 있는 것이 가장 크다고 해 큰보름, 남쪽에 누운 모습이다 해서 눈보름, 서쪽에 있는 것은 동굴(괴)이 있다고 해서 괴보름으로 불렸다. 큰보름과 봉림사 북측을 비롯한 하논의 땅은 그 지형학적으로 좋은 땅이라고 해서 전부터 묘가 많았다.
봉림사 앞쪽 대나무들도 일본인들이 심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가장 먼저 밀감농사가 지어진 곳도 하논이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은 하논이 가장 따뜻해 귤나무와 배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모 어린이집이 지어진 곳은 예전 배밭이었다. 하논 다음으로 서홍리 분토왓(말똥이 많은 밭)에 감귤농사를 지었다.
당시 산남지역에서는 ‘부자라면 하논에 논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하논은 금싸라기 땅이었다. 당시 이 지역 토지 1평을 팔면 다른밭 4∼5평은 족히 사고도 남았다. 요즘엔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 자신의 논도 놀고 있다는 강씨. 그때를 생각하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강씨는 “4·3 당시 하논사람들은 밤마다 괴보름의 동굴에서 숨어지냈다”며 “지금은 동굴이 남아있지 않지만 동굴에는 당시 30명 이상이 들어갈만한 크기였다”고 전했다. 4·3의 희생자도 있었다./이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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