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

[붓다의가르침] 2. 불교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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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정도
작성일12-09-26 00:00 조회1,9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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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진리의 수호



www.sunwoo.or.kr/윌폴라 라훌라 原著, 전재성 譯著



진리를 수호하는 말을 해달라고 젊은 바라문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붓다는 진리의 수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붓다] "만약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믿는다 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좋아함이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좋아한다 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배운 바가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배웠다 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상태에 대한 분석이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상태에 대해 분석한다 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이념에 대한 심취가 있다면 이와 같이 이념에 대하여 심취한다 라고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그가 좋아하는 것을 믿으며, 나는 이것을 믿는다 라고 말한다. 그 한계 내에서 그는 진리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그 믿음이나 신념 때문에 그가 믿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붓다는 이와 같이 말했다.

[붓다] "하나의 관점에 집착해서 다른 것들을 열등하다고 멸시하는 것, 현명한 사람은 이것을 족쇄라고 부른다."

붓다는 또한 제자들에게 원인과 결과에 대한 가르침을 설했다. 그 때에 그들은 분명히 그것을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붓다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명확하고 분명한 관점이라도 그것에 집착하고 애착하고 달라붙는다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내 가르침마저 강을 건너면 놓아버려야 하는 뗏목과 같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경전에서도 붓다는 그의 가르침을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에 비유해서 강을 건너면 그 뗏목을 버려야 하며, 짊어지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뗏목의 비유를 설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는데 커다란 홍수를 보았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는데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으로 가는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내가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면 어떨까?

그래서 그 사람은 수행승들이여,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갔다. 그가 저 언덕에 도달했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내가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갈 곳으로 가 버릴까?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은 이와 같이 해서 그 뗏목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행했는가?"

[수행승]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그때 그 사람이 저 언덕에 도달했을 때 이와 같이 생각했다.

이제 나는 이 뗏목을 육지로 예인해 놓거나 물 속에 침수시키고 갈 곳으로 가 버릴까?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하면 그 사람은 뗏목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행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건너가기 위하여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뗏목의 비유를 설했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뗏목의 비유를 아는 너희들은 법(法)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非法)이랴."

이 우화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인간을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고 고요한 열반의 성취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붓다가 설한 모든 가르침은 이러한 식으로 끝난다. 그는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어떤 것도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실제적인 교사였으며 인간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만을 가르쳤다.

붓다는 한 때에 알라하바드 근처의 꼬삼비에 있는 씽싸빠숲에 있었다. 그때 그는 적은 양의 씽싸빠 나뭇잎을 손에 집어들고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손으로 집어든 적은 양의 씽싸빠 나뭇잎과 저 씽싸빠 숲 위에 있는 나뭇잎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욱 많겠는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으로 집어든 적은 양의 씽싸빠 나뭇잎보다 저 씽싸빠 숲 위에 있는 나뭇잎이 훨씬 많습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알고 나서 그대들에게 설한 것이 매우 적고 설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수행승들이여, 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까닭이냐?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바른 이치에 맞지 않고, 청정한 삶을 시작하는데 맞지 않고, 싫어하여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라지기 위한 것이 아니고, 소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잘 알기 위한 것도 아니고, 올바로 깨닫기 위한 것도 아니고, 열반에 드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설하지 않았다."

붓다가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은 것들을 숙고한다는 것은 마치 학자들이 헛되이 수고하는 것처럼 쓸데가 없는 것이다. 붓다는 순수하게 명상적이고 환상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형이상학적인 토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러한 것을 황당무계한 견해 로 간주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몇몇 제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예로 잘 알려진 고전적인 열가지의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진 말룽까뿟따12)가 있다. 어느날 말룽까뿟따는 오후의 명상을 끝내고 붓다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드린 다음 그 옆에 앉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말룽까뿟따] "세존이시여, 제가 홀로 명상할 때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여래께서는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

첫째, 우주는 영원한가? 둘째, 우주는 영원하지 않은가? 셋째, 우주는 유한한가? 넷째, 우주는 유한하지 않은가? 다섯째, 영혼은 육체와 같은가? 여섯째, 영혼은 육체와 다른가? 일곱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여덟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아홉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열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도 하는가? 여래께서는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이 저에게는 못마땅합니다. 저는 세존께 이러한 것을 묻고 싶습니다. 만약 세존께서 저에게 대답을 주신다면 저는 그 밑에 머물러서 거룩한 삶을 따를 것입니다. 세존께서 알고 계신다면 제게 설명해주십시오. 세존께서 모르신다면 알고 또한 보지 못하는 자로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보지 못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입니다."

말룽까뿟따의 질문에 대한 붓다의 답변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쓸데없이 마음의 평화를 혼란시키며 시간을 낭비하는 오늘의 수많은 사람에게 매우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붓다] "말릉까뿟따여, 내가 그대에게 말룽까뿟따여, 와서 내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하라. 나는 그대에게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 설명할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말룽까뿟따]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붓다] "말룽까뿟따여, 그대가 나에게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 밑에서 거룩한 생활을 영위할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말룽까뿟따]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붓다] "말룽까뿟따여, 나는 오라, 그리고 내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하라.내가 그대에게 이러한 문제들을 설명하리라 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대가 나에게 저는 여래 밑에서 거룩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고 여래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해결해주실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없다. 어리석은 자여, 이러한 상황 아래서 누가 누구를 거절하겠는가?

말룽까뿟따여, 어떤 사람이 나는 여래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여래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여래에게서 대답을 못들은 채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죽어갈 것이다."

여기서 붓다는 유명한 독 묻은 화살의 비유를 든다.

[붓다] "말룽까뿟따여,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그의 친구가 와서 그를 외과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했다고 하자.

나를 쏜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그가 귀족인지 바라문인지 평민인지 노예인지, 그의 이름과 성은 무엇인지, 그의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그의 안색이 검은지 푸른지 노란지, 그가 어떤 마을이나 도시에서 왔는지를 알아야겠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고 하자.나를 쏜 활을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보통의 활인지 석궁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말룽까뿟따여, 이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룽까뿟따여, 만약 어떤 사람이 우주가 영원한가, 아닌가 와 같은 문제에 해답을 얻고서야 비로소 나는 여래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라고 한다면, 그는 여래로부터 그 해답을 얻기 전에 죽어갈 것이다."

그 때에 붓다는 거룩한 삶은 그러한 견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말룽까뿟따에게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 사람들이 어떠한 견해를 가지건 태어나고,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있다. 이러한 것을 멈추는 열반이 진정한 삶이다. 그래서 붓다는 말한다.

[붓다] "말룽까뿟따여, 그러므로 나는 설해야 할 것은 설했고 설하지 않아야 할 것은 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우주는 영원한가 아닌가 등은 설하지 않았다.

말룽까뿟따여, 내가 왜 그것을 설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본질적으로 거룩한 삶과는 관계가 없으며, 멀리 떠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멈추고 삼매에 들고 바르고 원만히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대에게 이러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붓다가 설한 가르침은 무엇인가?

[붓다] "그러면 말룽까뿟따여,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괴로움,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말룽까뿟따여, 나는 왜 그러한 것들을 설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고귀한 생활과 연관되어 있으며 멀리 떠나고 사라지고 소멸하고 멈추고 삼매에 들고 바르고 원만히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것들을 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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