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

[붓다의가르침] 2. 불교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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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정도
작성일12-09-26 00:00 조회1,9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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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리는 어떠한 상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www.sunwoo.or.kr/윌폴라 라훌라 原著, 전재성 譯著



사람들은 이따금 불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상관없다. 불교는 정의를 내리는 그 수준으로 정의 내리는 사람에게 남는 것이다. 그 수준은 하찮은 것이다.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에 부여하는 불교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가 거기에 부여하는 이름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윌폴라 라훌라] "이름 가운데 무엇이 있는가? 장미라는 것이 있나니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붙인다고 해도 향기로움은 그대로 이리라."

이처럼 진리에는 어떤 상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교나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누구의 독점도 아니다. 진리를 이해하는데 분파주의적인 상표는 방해가 될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해로운 선입견을 낳는다.

이러한 상황은 정신적이나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 사람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그에게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딱지를 붙여서 보게된다. 다시 말해서 마음속에 그러한 표제와 관련된 선입견을 가지고 그 사람을 보게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우리가 그에게 부여한 모든 선입견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분파주의적이고 분파적인 상표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통된 인간성이나 감정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붙이려고 든다. 예를 들어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이야기하거나, 그것들과는 다른 자비에 대해서는 낙인을 찍어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나 불교도나 힌두교도나 이슬람교도의 소유가 아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불교적이나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사랑, 자비, 동정, 인내, 관용, 우애, 탐욕, 증오, 악의, 무지, 속임수 등과 같은 인간성과 감정에 분파주의적이고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상표가 붙을 수 없다. 그것들이 특수한 종교에 소속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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