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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만약 자아나 영혼과 같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실체나 본질이 없다면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는 죽은 후의 삶을 이야기하기 전에 현재의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지속하는지 살펴보자.
이미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삶이란 다섯가지 존재의 다발의 집합이며 정신물리적인 힘의 결합이다. 이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연속적인 두 순간에도 그들은 똑같지 않다. 매순간마다 그것은 생겨나고 사라진다. 붓다는 이와 같이 말했다.
[붓다] "수행승이여, 다섯가지 존재의 다발이 생겨나고 파괴되고 사라지고 죽을 때마다 우리들은 태어나고 파괴되고 사라지고 죽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생동안 우리는 매순간마다 태어나고 죽지만 우리는 지속한다. 이러한 삶 속에서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자아나 영혼이 없이도 삶이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육체의 기능이 정지한 후에도 이런 힘의 배후에 자아나 영혼이 없이도 이러한 힘들이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이해할 수 없겠는가?
이 육체가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에 에너지는 육체와 더불어 죽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삶을 부를 수 있는 어떤 다른 형태를 취해서 지속해 나아간다.
어린아이는 정신적, 육체적, 지적 능력이 유약하지만 그 내부에 완전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른바 존재를 형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가 그 내부에 새로운 형태를 취해서 점점 자라나 완전히 성숙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영원하고 불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분명히 영원하고 불변한 것이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파괴되지 않은 채로 지속하지만 순간마다 변화하는 연속이다. 이 연속이란 실제로 움직임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밤을 새워 타는 불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불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불꽃도 아닌 것이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60세가 된다. 그 어른은 60년 전의 어린아이와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이처럼 여기서 죽은 사람과 다른 곳에서 윤회하여 태어난 사람은 같은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동일한 연속의 계속이다.
태어남과 죽음의 차이는 일 순간의 생각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 생에서 마지막 생각의 순간이 이른바 내생에서의 처음 생각의 순간이다. 그것은 실로 연속의 계속이다. 이 생 자체에서도 한 생각은 다음 생각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불교적 시각에서 사후의 문제는 커다란 신비가 아니다. 불교는 이 문제에 관하여 결코 근심하지 않는다. 존재하고 무엇이 되려는 탐욕이 있는 한 윤회는 계속된다. 마구 내닫는 탐욕이 진실이나 열반을 보는 지혜로 부수어졌을 때에만 윤회는 그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