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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존재 라고 불리는 다섯가지 존재의 다발은 형성의 괴로움에 속한다. 존재의 다발의 배후에 괴로움을 체험하는 존재 나 나 는 없다. 그래서 붓다고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붓다고싸] "괴로움은 있지만 괴로워하는 자는 발견되지 않고 행위는 있지만 행위하는 자는 발견되지 않는다. 열반은 있어도 열반하는 자는 없고 길은 있어도 길을 가는 자는 없다."
움직임의 배후에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는 어떤 것은 없다. 오직 움직임만이 있다. 삶이 움직인다는 것은 옳지 않다. 삶 그 자체가 움직임이다. 삶과 움직임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하는 것의 배후에 생각하는 자는 없다. 생각을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자는 발견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가르침이 데카르트 학파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라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여기서 삶은 시작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에 의하면 삶이란 흐름의 근원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 사람은 이러한 대답에 당혹해 할 것이다. 그러나 붓다에게 신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붓다는 서슴없이 신은 생겨난 적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붓다는 자신의 이러한 대답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붓다는 이와 같이 말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의 시작은 알 수가 없다. 무명에 덮인 중생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며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은 시설되지 않는다."
붓다는 더 나아가서 윤회의 원인이 되는 무명에 관하여 무명의 시작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무명은 없다라는 식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무명의 선행(先際)는 이것보다 앞에는 무명이 없다. 이것의 뒤에 무명이 발생한다 라고 시설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은 이와 같이 설해진다. 그렇지만 무명은 조건적인 것이다 라고 시설된다. 무명은 수행승들이여, 자양분을 수반하며 자양분을 수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이것이 간단히 말해서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 붓다는 이와 같이 말했다.
[붓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발생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며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도 본다."
이러한 진리가 어떤 사람들이 잘못 상상하는 것처럼 불교도들을 우울하고 슬픈 삶으로 이끌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진정한 불교도는 가장 행복한 존재이다. 그들에게는 공포나 탐욕이 없다. 그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때문에 변화나 뜻하지 않은 재난에 대하여 흥분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며 언제나 평온하고 고요하다.
불타는 음울하거나 음산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언제나 미소짓는 사람 이라고 불리었다. 붓다의 그림이나 조각 속에서 붓다는 언제나 행복하고 고요하고 만족스럽고 자비롭게 표현되어 있어 고뇌나 번민이나 고통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록 삶에 고뇌가 따른다고 하더라도 불교도는 그것에 대하여 화를 내거나 못 견뎌해서는 안된다. 불교에 의하면 삶의 근본적인 악 가운데 하나가 증오 나 비난 이다. 증오란 "생명에 대한 악의, 고통에 대한 악의, 고통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악의를 말한다. 그 기능은 불행한 상태와 악한 행위의 토대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괴로움을 못 참고 화를 낸다고 해서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더하게 하여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필요한 것은 화를 내거나 못 견뎌하거나 하지말고 괴로움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제거될 수 있는가 등 괴로움의 문제를 이해해서 인내, 지혜, 용기, 힘 등을 가지고 그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다.
초기경전에는 테라가타(장로게)와 테리가타(장로니게)라는 두 경전이 있다. 거기에는 붓다의 제자들에 관한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하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행복과 평화를 얻은 남성 수행자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여성 수행자에 관한 것이다.
꼬쌀라국의 왕이 붓다에게 "여위고 거칠고 창백하고 노랗게 맥없어 보이고 혈관이 드러난" 것처럼 보이는 다른 종교의 많은 제자들과는 달리 붓다의 제자들은 "즐겁고 의기양양하고, 기쁨과 희열에 넘치고, 정신적인 생활을 즐기고, 감각적으로 만족하며, 걱정이 없으며, 고요하고, 평화롭고, 사슴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왕은 이러한 건강한 성품은 제자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잘 깨달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존이시여, 이것에 대하여 저는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이 존자들은 세존의 가르침에서 뛰어난 것, 시대를 초월한 승묘한 것을 지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불교는 진리의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우울하고 슬프고 뉘우치는 음산한 태도와는 아주 정반대이다. 반면에 기쁨은 열반을 깨닫기 위해 연마해야 할 본질적인 요소로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7각지-후술-)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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