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

[붓다의가르침] 9. 오늘날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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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팔정도
작성일12-09-26 00:00 조회2,3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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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폭력, 평화, 사랑



www.sunwoo.or.kr/윌폴라 라훌라 原著, 전재성 譯著



오늘날 세계는 끊임없는 공포, 의심, 긴장 속에 놓여 있다. 또한 과학은 상상할 수도 없는 파괴력을 지닌 무기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 새로운 죽음의 무기를 휘두르면서 강대국들은 뻔뻔스럽게도 세계를 파괴와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능력이 다른 나라보다 강대하다고 자랑하면서 서로 위협하고 도전하고 있다. 지금 강대국들은 그처럼 광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내디딘다면, 그 결과로 인간성의 완전한 파괴와 상호전멸을 초래할 것이다. 강대국들이 직접 만들어낸 이러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인류는 그 탈출구를 찾기를 원하고 있으며 어떤 해결책을 얻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붓다가 제시한 길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 다시 말해서 붓다의 가르침인 비폭력과 평화, 사랑과 자비, 존경과 신뢰를 통해서 이기심과 증오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붓다는 "증오는 절대로 증오로서 쉬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에 의해서만 쉬어진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고 말했다. 또한 붓다가 "인간은 사랑으로 성냄을, 선함으로 사악함을, 자비로 이기심을, 진실로 거짓을 이겨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웃을 정복하고 복속시키기를 열망하고 갈망하는 한, 인류에게 평화나 행복이 있을 수 없다. 붓다는 말했다.

[붓다] "승리자는 증오의 씨를 뿌리고 패배자는 비참하게 굴복한다. 승리와 패배를 여읜 사람은 행복하고 평화롭다."

이처럼 행복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정복이다.

[붓다] "전쟁에서 수백만을 정복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자신을 정복한 사람은 정복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가르침이 매우 아름답고 고귀하고 장엄하지만 비실용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증오하고 서로 죽이고, 밀림 속에서의 야생동물처럼 끝없는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 사는 것이 더 실용적이고 편안한 것인가? 증오가 증오로서 달래진 적이 있던가? 악을 악으로 정복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증오를 사랑과 친절로서 달래고 악을 선으로 정복한 경우는 많다.

그것이 개인적인 경우에는 진실이며 실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국가적인 또는 국제적인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국민적 국제적 국가적 이라는 선동적인 용어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혼란해서 눈먼 봉사처럼 그 말에 기만 당하고 있다. 국가라는 것도 개인의 방대한 집합이 아닌가? 국민이나 국가가 행동하지는 않는다. 행동하는 것은 개인이다. 개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국가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국민이나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증오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랑과 친절로 진정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국민적 국제적 차원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한 개인에게 증오를 친절로 대하려면 도덕적인 힘으로서의 굉장한 의지, 용기, 신념, 대담성을 필요로 한다. 하물며 국제적인 일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실제적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는 핑계일 뿐이다. 그것은 옳다. 절대로 그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핵전쟁을 시도하는 것보다 덜 위험하다.

대내적 또는 대외적인 측면에서 비폭력, 평화, 사랑의 가르침을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데 적용시킨, 용기와 신념 그리고 선견지명을 가진 아쇼카 황제라는 통치자가 있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위대한 통치자인데 신들의 축복을 받은 자 라고 불렸다.

처음에 그는 아버지 빈두싸라 왕과 할아버지 짠드라굽따 왕의 전례에 따라, 인도 반도의 정복을 완수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까링가를 침공하여 정복했다. 이 전쟁에서 수십만이 죽고 부상당하고 고문당하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불교도가 된 이후에 태도가 돌변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바위에 새겨져 있는 유명한 칙령- 현재 아쇼카비문 칙령8호라고 불리는 -에서 그는 까링가 지방의 정복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대학살을 생각하면 고통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참회한 것을 오늘날에도 확인할 수 있다. 아쇼카는 또한 대중 앞에서 다시는 정복하기 위해 칼을 뽑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비폭력, 자제, 평화와 화해를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물론 신들의 축복받은 자 의 가장 중요한 정복은 진리에 의한 승리(法勝 dhammavijaya) 이다.

아쇼카 황제는 스스로 전쟁을 그만두었을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새로운 정복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열망했다. 그는 후손들에게 법에 의한 정복만을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을 위해 유익한 것이다. 그 힘이 절정에 달해 영토를 정복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전쟁, 폭력 따위와 인연을 끊고 평화와 비폭력으로 전환한 정복자의 예는 인류 역사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다.

여기에 오늘의 세계를 위한 교훈이 있는 것이다. 제국의 통치자가 공공연하게 전쟁과 폭력에 등을 돌리고 평화와 비폭력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이웃나라 왕이 아쇼카 왕의 신앙심을 이용하여 군사력으로 공격했다던가, 아쇼카 왕의 생존 당시에 제국 내에 반란이나 폭동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 반대로 그 제국의 밖에까지 평화가 전파되었고 그의 제국은 그의 자애로운 통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세력균형을 통해서 또는 핵보복력의 위협을 통해서 평화를 유지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무기가 공포를 조성할 수는 있어도 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공포를 통해서는 진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는 확보될 수가 없다. 공포를 통해서 증오, 악의, 적대감 등은 당분간 억압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라도 그것이 폭발하여 폭력을 초래하게 될지 모른다. 진정하고 참된 평화는 공포, 의혹, 위험이 없는 자비로운 분위기 속에서만 널리 행해질 수 있다.

불교는 권력을 위한 무자비한 투쟁이 없는 사회, 정복과 패배를 넘어서 평화와 안정이 널리 퍼져 있는 사회, 무고한 자에 대한 박해가 없는 사회, 스스로 이기는 자가 군사적, 경제적 힘으로 남을 정복하는 사람보다 더욱 존경받는 사회, 선이 악을 정복하는 사회, 원한, 질투, 악의, 탐욕이 사람의 마음을 물들이지 않는 사회, 자비가 행동의 추진력이 되는 사회, 가장 작은 생명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이 공정, 이해, 사랑만으로 취급되는 사회,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 물질적으로 만족되는 생활을 추구하면서도 가장 고결한 목표인 궁극적인 진리인 열반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사회를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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