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때에 밧차곳따라고 하는 유행자가 붓다에게 자아 또는 아트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물었을 때에 붓다가 침묵을 지켰다는 것은 많이 인용되는 내용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유행자 밧차곳따는 붓다에게 물었다.
[밧차곳따] "존자 고따마여, 자아는 있습니까?" 붓다는 침묵했다.
[밧차곳따] "그러면 고따마여, 자아는 없습니까?" 다시 붓다는 침묵했다.
그러자 유행자 밧차곳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버렸다. 아난다는 왜 밧차곳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는가를 물었다. 붓다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붓다] "아난다여, 유행자 밧차곳따가 자아는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만약 내가 똑같이 자아는 있다 라고 대답했다면 유론(有論-실체가 있다는 영원주의적 견해)을 가진 수행자나 성직자에 동조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유행자 밧차곳따가 자아는 없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만약 내가 똑같이 자아는 없다 라고 대답했다면 무론(無論-실체가 없다는 허무주의적 견해)을 가진 수행자나 성직자에 동조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내가 유행자 밧차곳따의 자아는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똑같이 자아가 있다 라고 대답하면 아난다여, 일체의 법은 무아이다 라는 지혜의 발현에 순응하는 것인가?"
[아난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붓다] "아난다여, 내가 유행자 밧차곳따의 자아는 없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똑같이 자아가 없다 라고 대답하면 아난다여, 예전에 나에게 자아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아가 더 이상 없다 라고 혼미한 밧차곳따는 더욱 혼미해질 것이다."
이제 붓다가 왜 침묵을 지켰는지 명백히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를 논의할 때에 붓다가 질문이나 질문자를 다룰 때에 그 배경이나 문맥을 숙고해본다면 더욱 분명하게 그 의미를 살필 수가 있다. 붓다는 어떤 질문이 들어오면 숙고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대답하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과 지성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질의자를 깨달음으로 이끌어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그들의 발전단계, 경향, 정신적 성숙, 성격, 특수한 질문을 이해하는 능력 등에 따라서 가르침을 폈다.
붓다에 의하면 질문을 다루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어떤 이에게는 즉시 대답해주어야 한다(應一向記問). 둘째, 어떤 이에게는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應反詰記問). 셋째, 어떤 이에게는 질문을 제쳐두어야 한다(應捨置記問). 넷째, 어떤 이에게는 분석적으로 대답해주어야 한다(應分別記問).
그리고 질문을 제쳐두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는 영원한가 아닌가와 같은 잘 알려진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붓다가 밧차곳따에게 침묵으로 대답했듯이 특수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거나 설명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그런 방법으로 붓다는 마릉까뿟따(만동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대답했다.
그러나 자아나 아트만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응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에 관해서는 늘 거론했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자아는 있다 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자아가 없다 는 지혜와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붓다는 또한 자아가 없다 라고 말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있는 의문에 관해 엇갈린 생각을 갖고 있는 가엾은 밧차곳따를 마구 혼란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무아 의 이념을 이해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별한 경우에는 질문을 고귀한 침묵으로 제쳐두는 것이 현명하다.
붓다는 오래 전부터 밧차곳따를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밧차곳따의 경우가 궁극적인 의문을 품은 구도자로서 붓다를 찾아온 첫 번째의 사람은 아니었다. 지혜롭고 자비로운 스승은 이러한 방황하는 구도자를 위해 많은 가르침을 폈고 깊은 사색에 잠기곤 했다. 빠알리 경전에는 유행자들이 밧차곳따와 같은 문제에 사로잡혀 방황하다가 붓다와 그의 제자들을 만나서 밧차곳따와 유사한 질문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붓다의 고귀한 침묵은 어떠한 웅변적인 대답보다도 밧차곳따와 같은 사람에게 더욱 효과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