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

[불교경전입문] 55. 꽃향기와 같이 (無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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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5-06 00:00 조회2,3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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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의 가르침은 불타의 교설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불타가 설한 바의 무아란 무아몽중(無我夢中)이나 망아황홀(忘我恍惚)의 경지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아의 실체를 엄밀하게 주시하여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곳에서 밝혀지는 것이 무아의 원리이다. 흔히 우리는 그릇된 집착 위에 자아라는 것을 설정한다. 다시 말해 내가 소유한 것이 나는 아닌 것이다. 또한 이 신체를 그대로 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영혼과 같은 존재를 상정하여 그것을 나의 본질이라고 하는 견해도 불교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찰의 결과 얻어지는 결론으로서의 무아의 원리를 불타는 자주 ‘나의 소유(我所)도 없고 나 자신(我我)도 없으며 나의 본질(我體)도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부정적인 측면만이 강조되어 그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런데 케마(差摩)라는 한 비구가 ‘나는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거꾸로 우리들에게 무아의 원리가 뜻하는 바를 보다 극명하게 밝혀 주는 면이 있어 여기에 옮기고자 한다. 


케마는 코삼비(拘睒彌)의 고시타(瞿師多) 동산에서 병상에 누워 있었다. 다른 비구들이 병문안을 와서 ‘얼마나 편찮은가.’라고 묻자 그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다.’고 대답했다. 거기에서 문병 온 비구들이 그를 격려하고자 ‘불타는 무아의 가르침을 설하시지 않았는가.’라고 하자, 케마는 ‘나는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비구들 간에 물의를 빚어 여러 사람이 따져 묻기 위해 케마에게로 몰려왔다. 그때 케마가 답한 것은 이러했다.


“벗들이여, 내가 ‘나는 있다.’라고 한 것은 육체를 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역시 나의 감각이나 의식을 가리켜 나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들을 떠나 별도의 내가 있다고 한 것도 아니다.


벗들이여, 그것은 예를 들면 파두마(鉢曇摩)나 푼다리카(分陀利) 꽃의 향기와 같은 것이다. 꽃향기는 꽃의 어느 부분에 있는가. 꽃잎에 향기가 있는가. 또는 줄기에 향기가 있는가. 아니면 꽃술에 향기가 있다고 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의 향기는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육체를 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감각이나 의식을 나라고 해서도 안 된다. 혹은 그것들을 떠나서 별도의 나의 본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들의 통일체로서 ‘내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 견해는 많은 비구들을 승복시켰다. 우리들도 이러한 견해에 의해 보다 적극적인 무아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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