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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깃든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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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3 00:00 조회2,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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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刹에 깃든 의미


 



우리가 사찰을 찾을 때에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一柱門이요, 다음에 차례로 천왕문 및 不二門 등을 거쳐 법당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사찰이나 일정한 배치를 보이고 있는 각각의 건물 등은 어째서 그렇게 이루어져야만 했던 것일까? 여기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살펴 보고자 하는데 먼저 절[寺]의 유래와 語源부터 알아 보기로 한다.


 



⑴ ‘절’의 유래와 어원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문화재를 차지하고 있으며, 불교라면 먼저 연상하게 되는 「절」에 대하여 그 유래와 語義 및 어원에 대해서 인도․중국․한국 등의 북방 대승 불교국에서 찾아 보기로 한다.


사찰의 어원은 「상가라마[Saṁghārāma, 僧伽藍摩]」로서, 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 등의 四部大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을 「僧伽藍摩」라고 옮겼으며, 다시 줄여서 「伽藍」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번역하여 「衆園」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불교를 신봉하고 수행하는 단체 대중이 사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불교가 처음 일어났었던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승려들의 생활터전인 사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無所有를 이상으로 삼았던 초기의 수행자들은 나무 밑이나 숲 속․석굴․골짜기․냇가․묘지 등의 장소에 거주하면서 무일푼과 무소유를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 禪定과 진리의 탐구에만 몰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雨期의 安居제도가 차츰 정립되면서 승려들은 부처님을 모시고 한 곳에 모여 정진할 수 있기를 열망하게 되었고, 유력한 신도인 왕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은 음식물의 제공과 함께 불교교단에 ‘園林’을 기증하여 승려들을 머무르게 하였다. 園林은 원래 ‘휴식처’나 ‘과일이 있는 동산’을 의미하는데, 인도의 여름 더위는 나무 그늘의 시원함만이 유일한 구원의 장소요 가장 적합한 수행처가 되었던 것이다.


 



□ 인도의 정사[精舍, Vihāra]와 상가라마[Saṁghārāma, 僧伽藍摩]


 



인도에 있어서는 스님[僧]들이 거주하는 사택을 ‘위하라[Vihāra]’라고 하는데 이것을 ‘精舍’라고 번역한다. 불교최초의 園林은 마가다[Magadha, 摩竭陀]국의 빔비사라[Bimbisāra, 頻婆娑羅]왕이 불교교단에 기증한 라자그리하[Rājagṛha, 王舍成]의 ‘竹林園’이다.


부처님께서는 6년의 수도 끝에 마침내 보리수 아래서 大覺을 성취하여 붓다[Buddha, 佛陀]가 되신 뒤에는 고해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머나먼 길을 떠나셨다. 그리하여 맨 처음으로 므리가다와[Mṛgadāva, 鹿野苑: 지금의 Benares의 북쪽 6㎞]으로 가시어 카운디냐[Kauṇḍinya, 憍陳如]를 비롯한 다섯 명을 위하여 최초의 설법[初轉法輪]을 설하신 후 계속하여 라자그리하로 가셨다. 그 때에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부인 와이데히[Vaidehī, 韋提希] 왕후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거처할 곳을 시주하기로 하여, 라자그리하의 북쪽 교외에 있는 칼란다카[Kalandaka, 迦籣陀] 長者의 소유인 ‘竹林’을 희사받고 그 곳에 집을 지어 부처님 일행을 모시어 머무시도록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竹林精舍[Veṇuvana-vihāra]’이다. 처음에는 이 園林안에 있는 나무 밑이나 자연 석굴에서 승려들이 거주하였으나, 부호였던 칼란다카가 비나 이슬을 피할 수 있도록 허술하나마 오두막 60채를 지어 기증하게 됨에 따라 竹林園에는 불교최초의 사원인 ‘竹林精舍’가 건립되었던 것이다. 그 뒤 정사는 차츰 격식을 갖춘 주거용 건축물로 바뀌어 갔고 그 규모도 커져갔다. 죽림정사 이후 수닷타[Sudatt, 須達多]長者의 깊은 신심이 어린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釋尊 당시의 최대사찰로 알려져 있는 「祇園精舍」가 건립된 것도 얼마 후의 일이며, 그러한 精舍 가운데 부처님 당시에 이름난 다섯 곳이 있어 ‘天竺五精舍’라고 한다.


그러므로 정사나 상가라마가 상가[Saṃgha, 僧伽]의 거주처라는 뜻에는 다를 바가 없지만, 실제로 부르는 경우에는 내용을 달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정사는 주로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시고 계신 곳을 일컫고, 상가라마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그의 제자들만 거처한 곳을 가리켜 불렀던 것이다.


 



□ 중국의 寺



불교의 중국전래에 대하여서는 다음 明帝에 대한 설화가 자주 언급된다. 이에 의하면 後漢 明帝 永平10년(서기 67년) 인도에서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두 스님이 흰 말[白馬]에 ????四十二章經????을 비롯한 많은 藏經을 싣고 당시의 수도인 洛陽으로 왔으며, 이에 당시의 조정에서는 그 분들이 외국인이므로 당시의 관례에 따라서 외무부의 소속 관아(官衙)인 홍려시(鴻慮寺)에 머물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그 분들의 거주할 적당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그대로 그 곳에 머무르게 하고, 그 곳에서 譯經 등 많은 佛事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홍려시’라는 명칭을 쓸 수가 없으므로 그 분들이 타고 온 흰 말을 기념하여 ‘白馬寺’라고 고쳐 부르게 된 것으로, 이것이 중국에 있어서의 사찰의 효시이다. 이후로 중국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僧伽들의 거처를 ‘寺’로써 부르게 되었으니, 사실 ‘寺’란 불교의 전용어가 아니라 불교 전래 이전에 이미 관아에서 쓰이던 용어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절


 



우리나라에서는 漢字의 ‘寺’를 ‘절 사’라고 읽는데, 그 때의 ‘절’은 오로지 불교의 가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절’의 어원은 무엇인가. 흔히 “절에 가면 절[禮拜]해야 하므로 절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는 옳지 않은 말이다.


우리 한반도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중국 前秦의 符堅이 順道로 하여금 佛像과 佛經을 갖고 가도록 한 것이라고 하는데, 2년 뒤에는 다시 晋으로부터 阿道가 왔다. 다음 해인 375년 2월 정부에서는 ‘省門寺[혹은, 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하고 ‘伊弗蘭寺’를 세워 아도를 머물게 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가람의 시초이다.


그런데 신라에서는 19대 訥智王(?~458: 訥智麻立干) 때에 墨胡子가 一善郡[지금의 善山郡]의 ‘모례[毛禮 혹은 毛祿]’라는 사람의 집에 머무르며 몰래 불교를 폈다고 한다. 그런데 ‘모례’는 원래 우리말의 ‘털레’를 漢字로 音寫한 것으로, 그 ‘털례네 집’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저절로 ‘털례네 집’은 가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네’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것이 다시 ‘털례’⇒‘털’⇒‘덜’⇒‘절’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 일본어에 있어서 ‘寺’의 발음이 ‘데라[てら]’임을 생각해 볼 때, 그 말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털례’에서 변천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精舍’는 불교교단의 공동재산이었고, 안거수행을 위한 실제적인 목적에 따라 생겨나게 된 것이다. 사찰은 정진을 위한 수행처로 승려들의 공동 주거지로 정착되어 갔지만, 다른 한편으로 초기교단의 생활지침이 되었던 ‘四依’는 차츰 사라져 갔다. 즉, 3개월의 안거가 끝난 뒤에도 승려들이 유행 생활로 돌아가지 않은 채 정사에 머무르는가 하면, 분소의(糞掃衣)를 입는 전통도 차츰 사라지게 되었고, 탁발보다는 정사에 앉아서 신도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받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물론 모든 승려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승려들의 생활형태가 유행편력의 생활에서 정사 거주의 생활로 변모되어 갔던 것이다.


한편, 승려들의 사찰거주 생활은 불교교단을 후세에까지 존속시킬 수 있는 최대의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단순한 유행자의 집단에 지나지 않았던 당시의 신흥종교들 가운데 현대에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은, 같은 沙門[Śramaṇa]의 집단으로 출발하여 불교보다 약간 늦게 僧園의 조직을 확립한 자이나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뿐이다. 결국 사찰의 건립은 그 나름대로 교단과 교법을 유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견고한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찰의 유래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찰이 단순한 승려의 생활터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해탈을 위한 철저한 무소유의 생활을 위하여 ‘四依’의 실천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탁발과 분소의와 나무 아래에서의 좌선으로 인하여 그 육체는 고달프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정신적인 풍요는 더하였을 것이다. 빈한한 생활과 나무 아래서의 정진 그리고 무소유의 정신은 無明을 씻는 첩경으로, 제자들의 마음 속에 깃든 無明과 번뇌의 티끌을 씻어내기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사찰의 건립을 서두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은 건립되었다. 미물의 살생마저도 막아야 한다는 철저한 불살생의 정신이 사찰의 건립을 허락한 것이다. 철저한 불살생은 대자대비를 낳는다. 개인의 해탈보다는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앞서야 한다는 석존의 가르침이 사찰건립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찰을 찾고 사찰에 머무르는 이들은 이와 같은 정신적 배경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사찰은 정진의 도량이다. 그곳은 부처의 세계로 중생을 인도하는 곳이다. 무소유의 마음을 가꾸고 대자대비의 불꽃을 피우며, 중생을 살리는 도량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깨어나고 맑아져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참삶의 길을 배워야 할 것이다. 사찰의 중심에 도달하기까지의 길목 길목에는 불국토를 향하는 수행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조형물들이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다. 이제 지금까지 살펴본 의미를 상기하면서 사찰을 구성하고 있는 각 전각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찰에 도착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일주문’이요, 계속해서 ‘천왕문’과 ‘불이문’ 등을 만나게 된다. 사찰의 문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것은 곧 「法門」이다. 佛法에 의지하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에 문을 들어서는데는 지극한 마음가짐이 뒤따르고 철저한 수행과 실천이 함께 요구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나 고승들의 설법을 「法門」이라고 칭하고 있다. 왜 「法文」이라고 하지 않고 「法門」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진리의 세계․法의 세계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는 것은 곧 法의 문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 문은 열고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 그 문은 반드시 통과하여야 하는 關門이요, 실천의 문이기 때문에 「法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사찰의 문을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山門’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그것은 불교의 독특한 우주관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즉, 세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須彌山’의 중턱에 ‘사왕천’을, 정상에는 ‘도리천’을 두었으며, 그 위쪽으로 26개의 하늘을 층층히 두고, 수미산 기슭에는 인간과 축생의 세계 등이 있으며, 땅 밑에는 지옥이 있다고 설정하였다. 결국 28개의 하늘나라를 초월한 세계를 부처님의 경지로 삼았던 것으로, 우리나라의 사찰은 이와 같은 불교의 우주관에 입각한 조형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사찰의 문을 차례로 통과한다는 것은 번뇌와 고통의 세계인 세속의 마을을 떠나 수미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부처님의 세계로 향하여 나아감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山門」이라고 한 것이다.


수미산의 기슭과 중턱과 마루에 있는 세 개의 山門, 그것을 「三門」이라고도 하는데, 이 세 개의 山門이야말로 불국정토에 도달하는 진정한 관문으로 사찰에서 매우 큰 비중을 지닌 전각으로 손꼽힐 수 있다. 그렇게 山門을 비롯한 각 전각들은 각기 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보다 먼저 우리는 生死流轉이 쉴새없이 반복되고 있는 迷界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람의 배치는 한 마디로 이 사바세계에서 천상을 거쳐 궁극적으로 부처의 세계로 이르게 됨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러한 迷界를 셋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三界’인데 그 내용은 전술한 바와 같다. 각 전각의 이름 및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일주문(一柱門)



사찰에 들어서는 山門 중 첫 번째의 門이다.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얻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을 들어서는 구도자에게는 신심을 성취시키는 기본적인 몇 가지 수행이 요구된다. 첫째는 철두철미하게 ‘인과응보의 도리’를 믿어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十善業을 닦는 것이며, 셋째는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깨달음[菩提]을 구하겠다는 굳건한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곳 일주문의 경지는 아직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로, 다만 분명한 결심과 실천의지를 보인 단계일 뿐이다.



㈏ 천왕문(天王門)



사찰로 들어서는 三門 중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는 大門으로 ‘四天王門’이라고도 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곳으로, 이 문 안에는 그림 또는 彫像한 사천왕을 봉안하게 된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인 인물들로서, 수미산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佛道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고대 인도의 신이었던 이들은 불교에 채택되면서부터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불법을 수호하는 護法天王의 구실을 맡도록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천왕문 안에는 동방의 지국천왕이 큰 칼을 쥐고 있으며, 북방의 다문천왕은 비파를, 서방의 광목천왕은 탑을, 남방의 증장천왕은 용을 쥐고 있는 무서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찰에 이러한 천왕상을 봉안한 천왕문을 건립하는 까닭은 사찰을 外護하고 악귀 등을 내쫓아 사찰을 청정도량으로 만들려는데 있을 뿐만 아니라,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放逸한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고 또한 어떤 악귀도 범접하지 못하는 청정한 장소라는 神聖觀念을 갖게 하기 위함에도 그 의미가 있다.


실로 사천왕은 힘겨워 하는 구도인들의 마음속에 깃든 잡된 요소들을 뿌리 뽑기 위하여 무서운 모습으로 수미산의 중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곧, 사천왕은 청정도량으로서의 사찰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수행자의 마음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제거하여 다시 일심 정진할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또한 수행과정상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는 一心의 일주문을 거쳐 이제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 천왕문에 이르기 전에 따로 金剛門을 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천왕문의 입구 문에 金剛力士의 모습을 그리거나 따로 금강역사상을 봉안하여 금강문의 기능을 대신하며, 때로는 仁王力士를 봉안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가람수호를 위한 제일 관문의 신이다.


그러나 이 관문을 통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구도자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①한없는 욕심[貪] ②시기․질투․분노하는 마음[瞋] ③자기자신의 본체를 모르는 어리석음[癡] ④교만[慢] ⑤의심[疑] ⑥고집[見] 등의 그릇된 모습을 깨닫고, 그들의 생각에서 그러한 그릇된 모습들을 없이하여, 크게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수행자는 여기에 이르러 一心에 근거를 둔 새로운 發心을 하여야 하는데, 그것을 다음의 「三種發心」이라고 한다.


① 直心 … 올바로 眞如法을 생각하는 것이다. 즉, 참되고 한결같은 眞如의 본성에 의 거하여 主․客의 분별을 지양하고, 주․객 일치의 평등성을 지닌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② 深心 … 마음의 근원을 파헤쳐 들어가서 그 자체를 발굴하고 빛나게 하겠다는 것 이다.


③ 大悲心 …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고통 속에서 구제하겠다는 마음이다. 이는 남을 이롭게 하고 남을 총명하게 하는 행위의 근본이 된다.



㈐ 불이문(不二門) / 해탈문(解脫門)



사찰로 들어가는 三門 가운데 사찰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다. ‘不二’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不二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解脫門’이라고도 한다.



㈑ 법당(法堂)



사찰에서 부처나 보살 등 불교신앙의 대상이 되는 불상을 모신 전각에 대한 총칭으로 佛殿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禪宗의 사찰에서 법을 설하는 건물을 법당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法門을 설하고 宗旨를 연설하는 등 온갖 法式을 행하였던 것이며, 또한 법당은 불상을 모신 佛殿 뒤에 두었다.


이와 같이 선종의 법당은 敎宗의 講堂과 같은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사찰에서는 법당과 佛殿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만들어, 그곳에서 예배를 보고 설법을 하는 등의 각종 행사와 의식을 함께 행하게 되었다. 특히 선종이 크게 성행하였던 우리나라에서는 佛殿을 법당이라고 지칭하고, 큰 의식이나 법회는 대부분 이곳에서 거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殿閣은 크게 上壇․中壇․下壇의 3단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법당이라고 하면 상단을 지칭하게 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3단 모두를 법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그 전각 속에 모셔져 있는 불․보살이나 神 등이 예배자들에게 언제나 적절한 설법을 하고 그들의 소원과 함께 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상단에 속하는 전각으로는 ‘大雄殿’․‘極樂殿’․‘藥師殿’․‘觀音殿’․‘大寂光殿’․‘靈山殿’․‘龍華殿’․‘應眞殿’․‘千佛殿’․‘寂滅寶宮’ 등이 있고, 중단에는 ‘冥府殿’․‘祖師堂’․‘四天王門’․‘金剛門’ 등이 있으며, 하단에 속하는 전각으로는 ‘山神閣’․‘七星閣’․‘獨聖閣’․‘三聖閣’ 등이 있다. 상단의 법당은 사찰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는데, 法華思想이 주류를 이루는 사찰에서는 대웅전을 중심에 두게 되고, 華嚴思想을 중요시하는 사찰에서는 대적광전을, 그리고 淨土思想을 중요시하는 사찰에서는 극락전을 중심에 두게 된다. 중단은 대체로 중심법당의 전면에 위치하게 되는데, 명부전 만은 하단과 함께 중심법당의 후면 또는 측면에 위치하고 있다.



각 법당에 봉안된 본존불은 다음과 같다.



① 대웅전 (또는 大雄寶殿)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봉안하고, 좌우에 가섭과 아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또는 미륵보살 등이 협시(脅侍)로 봉안된다.


② 대적광전 (또는 大光明殿․華嚴殿․毘盧殿)


대적광전․대광명전이라고 할 때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봉 안하는데, 비로전․화엄전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이 우 리나라에서의 상례이다.


③ 극락전 (또는 無量壽殿)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大勢至菩薩을 봉안하는데, 우리나라의 전각에서는 대세지보살 대신에 지장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더 많다.


④ 약사전


藥師如來를 중심으로 좌우에 藥王菩薩과 藥上菩薩을 봉안한다.


⑤ 용화전


미륵불과 日光菩薩 및 月光菩薩을 봉안한다.


⑥ 영산전


서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모신다.


⑦ 응진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과 아난․16나한․帝釋과 梵天을 모신다.


⑧ 천불전


천불 또는 삼천불을 봉안한다.


⑨ 관음전 (또는 圓通殿)


관세음보살을 모신다.


⑩ 명부전


地藏殿과 시왕전(十王殿)이 결합되어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형성된 전각으로서, 지 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十王․10동자상․판관․錄事․ 장군 등이 봉안된다.


⑪ 나한전(羅漢殿)


수도승에 대한 신앙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석가모니불을 主佛로 하여 좌우에 석 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한다. 보통 500명의 아라한들 을 모신 「오백나한전」과 16대 아라한을 모신 「應眞殿」으로 구별된다. 오백나한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小乘 최고의 敎法인 ‘아라한과’를 얻은 五百聖衆을 뜻하는 것 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후세에 오백나한의 숭배가 성행하여 절에 따로 나한전을 세 우고 그 상을 안치하는 관습이 생겼는데,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성행하였다. 이 오백나한은 중생에게 복덕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키는데 독특한 능력이 있다고 하여 많은 나한전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 오백나한에 대해서는 ????增一阿含經????․????十誦律???? 등에서는 부처님에 舍衛國 에서 500명의 아라한들에게 설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興起行經????에서는 여래가 오백나한을 위하여 매월 15일을 기하여 戒를 설하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법화경???? 에서는 부처님이 500명의 아라한을 위하여 특별히 授記를 베푸는 인연이 자세히 설 명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여 볼 때, 석가모니 당시에 실제로 500명의 뛰 어난 제자가 있었다고 믿어진다.



이상으로 사찰의 배치에 따른 각 殿閣들의 의미와 또한 그곳에 봉안되어 있는 부처님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 물론 또 다른 의미를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생각으로는 불자라면 가장 기본적․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라고 여겼기에 그에 대하여 알아 보았던 것이다. 결국 일주문을 지남을 시작으로 법당에 도달할 때까지의 여러 殿閣들은 곧 우리가 수행을 쌓아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불국토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앞으로는 어느 사찰에 가더라도 각 전각들과 본존불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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